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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이야기

1.5일간의 낙동강 종주...

정말 꿈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래저래 4대강 종주 및 국토종주를 거의 마치고 마지막 낙동강 종주 하나만 남아 있었는데요, 아내가 일요일(11월 3일)에 처가 시제가 있다고 토요일에 장인/장모님과 함께 처가 시골인 경북 "안동"으로 가라는군요. ㅋㅋㅋㅋ


그냥 갈 수 없죠. 안동이라면 낙동강길의 시점인 안동댐이 있는 곳 아닙니까... ㅋㅋㅋㅋ... 자전거 가지고 가야죠... ㅋㅋㅋ... 


근데, 생각을 해보니 일요일 오후에 시제 끝나고 나서 낙동강 종주를 시작하면 월요일~화요일까지 라이딩을 해야 하겠네요???? 회사 휴가도 다 쓰고 딱 하루 남은 상황에서 2박 3일 라이딩??? 말도 안되죠.. 


그래서 목요일 밤에 자면서 짱구를 굴렸습니다. 결론은, 금요일 하루 휴가 내고 새벽에 부산 가서 토요일 밤까지 열라 달려서 안동에 도착해보자 결심합니다. 경치를 보거나 뭐 그런건 전혀 생각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도장만 받는게 목표입니다. ㅋㅋㅋㅋㅋㅋ. 어떻게 달릴지 생각하며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고 금요일 새벽 6시 차를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타고 부산으로 가게 됩니다. 


버스에 사람이 없어서 기사님이 그냥 자전거 들고 타라 그러시네요. 좌석 한개에 3만원쯤 하는 우등버스 좌석 2개를 제 썸탈이 점유하고 부산으로 가게 됩니다. (앞에 번호판은 지난달에 아들네미와 다녀온 tour de DMZ 때 달아놓고 귀찮아서 안뗀 번호판^^)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부산이 서울에서 꽤 멀리 있군요. -_- 11시 다 되어 부산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부산 도착하면 바로 라이딩 시작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낙동강 종주길의 시작 지점인 낙동강 하구둑은 아래 사진 오랜지색 노선의 제일 좌측 신평역에 있네요.. 제가 버스에서 내린 부산 고속버스 터미널은 오랜지색 노선의 제일 우측에 있는 노포역.. -_- 1시간 넘게 끝에서 끝으로 전철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이동하고 보니 점심시간인데 먹을데도 딱히 없고 황량하더군요... -_-

어쨌거나, 부랴부랴 낙동강 종주길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가 오후 1시 즈음... 일몰시간을 찾아보니 5시 반쯤이네요... 여유시간은 4시간 반... -_- 처가인 안동까지 남은 시간은 오늘 반나절과 내일 하루.. 총 1.5일... ㅠ_ㅠ




달리다 보니 의외로 잘 달려져서 처음엔 기세 좋게 하루(24시간)에 끊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요, 300km 남짓이라면 잘 하면 하루에 끊을 수 있을거 같았는데... 첫날 라이딩 시작 시간이 너무 늦었고, 지도 살펴보며 아무리 단축해보려고 해도 350km 이하로는 잘 안줄어드네요. 암튼 그래서 결론적으로 마음 속으로 결심한 첫날의 목표는 부산->강정고령보!



첫날은  시간이 적기 때문에 조급해서 자전거에서 거의 내리지 않고 육포 뜯어 먹으며 달렸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배가 고파지면 옥션에서 주문한 유사전투식량(?)인 김병장 전투식량을 먹었습니다. 뜨거운 물에는 10분, 차가운 물에는 30분... 차가운 물 부어서 탑튜브 가방에 넣어놓고 달리다가 30분쯤 후에 멈춰서 먹고... 그래도 비교적 밥 같은 밥이 되기는 합니다. 생쌀 씹는 기분이 나서 그렇지... 어쨌거나 시간이 없으니 감지덕지....




대충 평균 26km/h정도로 쉬지 않고 달렸는데요, 합천창녕보쯤 가니 마음이 더욱 조급해집니다. 금방 해질라 그러고... 하룻만에 강정고령보 도착 못할거 같은 느낌이 막... 그러다, 먼저 종주하신 분에게 조언으로 들은 "급할땐 네비 키고 국도 달려~"라는 말이 생각이 나서 합천창녕보에서 창녕함안보까지는 휴대폰으로 네비(티맵) 키고 국도로 달렸습니다. 

근데, 도로가 무슨 막 휴게소 나오고 IC 같은거 나오고 그런 무시무시한 도로네요... -_- 차들이 엄청 씽씽 달리긴 하지만, 갓길이 넓고 아직은 해가 있어서 달릴만 합니다. 아래 지도의 아랫쪽 동그라미에서 윗쪽 동그라미까지 디립다 국도로 쏘았습니다. 국토종주가 아니라 국도종주... ^^


창녕함안보에서 도장 받고 달성보까지도 역시 네비 찍고 쐈습니다. 아래 지도 보시면 알겠지만, 빨간색 길들이 원래의 4대강 자전거길이고요, 퍼런 길이 제가 달린 경로.. 저 구간에 가볼만한 업힐들이 여럿 있다고 들었는데요(전 업힐 중독자... ^^), 시간이 너무 없어서 그냥 무시하고 도장만 찍어가며 국도로 쏩니다. 다음 기회에 가보렵니다. 박진고개 등등등..



그러다가 첫 난관이.... 달성보에서 도장 찍고 나서 첫날의 목표인 강정고령보를 향해 열심히 달리는데... 도로 공사중인 구간에서 미끄러져서 낙차 사고를 당했습니다. 


도로에 파인 곳이 길게 이어지는 구간이 있었는데 밤이라 잘 안보여서 바퀴가 미끄러져 중심을 잃고 넘어졌습니다. 헬멧 깨지고 팔 긁히고, 무엇보다 자전거가 많이 상했습니다. 헬멧 정말 중요합니다. 자전거가 넘어져서 땅바닥과 마찰로 불꽃을 튀기며 미끄러져 가고, 다음 순간 머리통이 바닥과 쾅 하고 부딪히는 그 짧은 순간에도 "내가 헬멧을 쓰고 있어 다행이다"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덕분에 기적적으로 거의 다친 곳이 없었습니다. 헬멧이 없었으면 아마 머리만 크게 다쳤을거 같습니다. 




이날 낮에 뒷바퀴의 스포크가 하나 부러진걸 발견했었는데요, 낙차 사고로 앞바퀴의 스포크가 2개가 더 부러졌습니다. 사실 서로 멀리 떨어진 스포크가 2개 부러지는건 심각한 문제는 아닌데요, 바로 인접해서 붙어있는 스포크가 2개가 부러지니 이야기가 다르네요.. -_- 


무엇보다, 바퀴가 바로 삐뚤빼뚤 되어 버립니다. 급한 마음에 인터넷 동영상 검색해서 스포크 장력조절을 해서 모양을 되돌리려고 했는데, 처음엔 잘 되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 "팅~" 하면서 바퀴살이 부러져 버립니다... 2개가... 암튼, 바퀴가 그 모양이니 속도가 안납니다....  목표인 강정고령보까지 약 5km 정도 남은거 같은데 사고 당하고 나니 더 이상 컴컴한 밤에 달리기 싫어져서 마침 그 근처에 여관이 보이기에 들어가서 하루 묵었습니다. 결국 첫 날 대략 170km 정도 달렸네요.




둘쨋날... 

새벽에 일어나 자전거를 자세히 살펴보니 많이 상했습니다. BB가 제 위치에서 약간 이탈한 듯 하고 크랭크가 좀 휘고 그랬는데 페달을 좀 밟아보니 주행에 아주 큰 지장은 없었습니다. 치명적인건 앞바퀴의 부러진 스포크들과 휘어버린 림때문에 앞바퀴 전체가 계속 좌우로 2cm 정도씩 왔다갔다 하는 것, 그래서 바퀴가 굴러가게 하려면 앞브레이크를 풀어놔야 해서 결국 앞브레이크는 못쓴다는 점... 게다가 스포크 2개가 상한 상태로 계속 달렸더니 달리면 달릴수록 바퀴의 모양이 변한다는 것... -_-


네이버 지도로 살펴보니 안동댐까지 대략 190km 정도가 남았네요. 이 상태로 국도로 나가 달리기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되어 그냥 자전거길로 얌전히, 17km/h 정도로 계속 달리기로 합니다. 그 이상은 속도가 잘 안나기도 하거니와 뒷브레이크만 가지고 제동을 해야하니 그 이상 속도로 달리면 위험하더군요. 


다만, 상주상풍교는 지난번 새재길 달릴 때 가서 도장 받았으니 상주보에서 바로 지방도로를 타고 안동댐 가는 길로 찾아 가기로 했습니다. 약 5~8km 정도 단축이 가능한거 같습니다. 아래 지도의 빨간 길이 상주상풍교 지나가는 원래 길, 퍼런 길이 제가 달린 지방도로 길... 다행히, 이 구간은 그다지 차가 많지 않아 위험하지는 않더군요.





이놈의 낙동강길 ...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습니다... 첫 날은 절대 시간이 부족해서 못 쉬고 바쁘게 달렸는데, 둘쨋 날은 속도가 안나서 역시 시간이 없어 못 쉬고 바쁘게 달렸습니다. 한참 달리다가 아래 표지판을 보니 막막하더군요. 17km/h 정도로 달리면 안쉬고 10시간 남았구나 하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더군요..... 게다가 갑자기 비가 엄청나게 오기 시작해서... 안동댐 도착할 때까지 거의 쉬지 않고 내렸습니다..  -_-





둘쨋날 역시 첫째 날과 마찬가지로 거의 못쉬고 육포와 전투식량으로 때우며 열심히 달렸습니다. 상주보까지는 언덕이 거의 없고 편안한 길인데. 상주보에서 안동댐까지 가는 길이 좀 험난했습니다. 은근히 오르막도 많고요. 소똥으로 가득한 마을로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요, 무슨 쓰레기 쌓아놓는 산도 지나가고.... 


도중에 만난 분과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1.5일동안 낙동강 종주를 하고 있다고 하니 깜짝 놀라시며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하시네요. 제 답은 "전 결혼을 했거든요"였습니다. 집에 호랑이 같은 마누라님 모시고 살면 그냥 가능해진다고... ^^


안동 다 와서 있는 배고개... 그 전에는 앞브레이크가 동작을 안해서 웨이트백 자세에 뒷 브레이크만 가지고 제동을 하며 달리고 있었는데요, 그 배고개는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그 방법으로는 제대로 제동이 안되더군요. 정말 시껍했습니다. 내리막 내려가는데 계속 속도가 붙어서 이러다 죽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디서 읽은게 기억나서 신발로 앞바퀴를 제동했는데요, 이게 해보니 말같이 쉽지가 않더군요. 더구나 바퀴가 좌우로 요동치고 있는 상태라서 제동이 더욱 힘들었습니다.


어쨌거나, 190km 달려서 비가 많이 오는 가운데 결국 안동댐에 도착했습니다. 


장인어른께서 차 가지고 마중 나와 주셨습니다. 보시더니 자전거 꼴이 그게 뭐냐고 하시면서 저 밥 먹는 사이에 고물상에 가져가라고... -_-  1년여간 14,000여km를 저와 함께 달린 썸탈이와 예기치 않은 난데 없는 이별... 게다가 자전거에 달려있던 지요 GM71 펌프, 속도계, 핸드폰 거치대, 라이트 거치대, 토픽 투어리스트 짐받이, 벨로 2107 안장, 14관절 가디언락 등등 하나도 떼지 못한 상태에서 다 가져다 버리셨습니다. -_- 탑 튜브 가방 하나는 남았네요. 거긴 지갑이 들어있었거든요.. -_-


암튼, 새로 사주신다니 뭐... ^^





이렇게 1년 내내 찜찜하게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국토종주와 4대강 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작년엔 아라뱃길에서 충주댐까지만 달렸었는데, 올해엔 북한강, 섬진강, 새재,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좀 많이 달렸네요. 아무래도 정권도 바뀌었고, 어느 날 갑자기 예산 삭감되어 인증제 더 이상 시행 안된다고 할까봐 부랴부랴 마무리 했습니다.


4대강 자전거길 마치고 보니, 가장 멋있던 곳은 북한강과 섬진강이었던거 같습니다. 대부분 자전거길이 좀 부실하긴 했지만 어쨌든 좋은 경험이 되었던거 같구요. 무엇보다 예전에는 자전거타면 기껏해야 10~20km 정도 타고 말았었는데 자전거가 100km 이상 탈 수도 있는거구나 하는걸 처음으로 제게 알려준 것 같습니다. 


다음번엔, 텐트 짊어지고 시애틀에서 LA까지 미 서해안 종주를 한번 떠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언제쯤이나 가능해질지는 모르겠지만요... ^^


(상주상풍교 자리에 찍은 안동댐 도장. 제 정신이 아니라는 반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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