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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이야기

"안동을 러브하지 않겠소? 나랑 같이."


안동

자덕들에게 안동은 뭔가 번거롭고 마음 한구석이 편안하지 않은 이미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낙동강 종주 자전거길의 시작점이 안동에 있는데 정작 국토종주 인증요건에서는 이곳이 빠져 있어서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보통 30~40km 정도를 달리면 도장 하나를 찍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안동 가는 길은 달리던 코스를 벗어나 생뚱맞은 방향으로 거의 70km정도를 달려 다녀와야하는 외딴 곳에 위치해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자덕들의 느낌적인 느낌과는 다르게 안동은 굉장히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입니다. 안동 곳곳에 수백년 된 고택들과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별다른 위화감 없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안동은 나라에 전란이 일어날 때마다 언제나 제일 먼저 의병이 봉기했던 고장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혹시 전쟁이 난다면 안동 양반들이 제일 먼저 K2 소총을 들고나와 적을 섬멸해줄거라는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코스

이번에 달린 안동코스는 거리 103km, 상승고도 1600m정도로 안동호, 임하호 등 2개의 호수와 낙동강, 안동의 산악을 여기저기에서 번갈아 만나며 달리는 아름다운 코스입니다. 이 동네는 지도에 대충 선만 그어도 그란폰도급의 훌륭한 코스가 나오는 동네인것 같습니다. 안동, 영주, 청송, 봉화 등등..


제 경우에는 아내의 직업상 가끔 방문하는 도산면에 위치한 "국학진흥원"에서 코스를 시작했는데요, 아래 지도의 18km 지점인 안동댐 인증센터에서 라이딩을 시작하는게 여러모로 더 편리합니다. 안동 터미널이나 안동역을 통해 안동에 들어오는 경우, 시내에서 충분히 식사 및 보급을 마치고 안동댐 인증센터를 찾아가 라이딩을 시작하면 됩니다. 자차로 가는 경우에도 네비에서 "안동댐 인증센터"를 찾으면 됩니다. 넓은 무료주차장과 편의점, 맛집들이 있어 라이딩을 시작하고 끝마치기에 편리한 장소입니다.


안동시내를 지나는 구간(15km~24km)은 아무래도 차도 많고 복잡하니 조심해야 합니다. 이 시내구간을 피하고 싶다면 아래 지도의 파란색 경로로 우회 하시면 됩니다. 우회 방법은 안동댐 인증센터에서 네비로 "안동문화관광단지"를 검색해서 달리면 되는데요, 거리는 조금 연장되지만 한결 호젓한 길로 달릴 수 있습니다. (참고로, 아래에 소개할 유교랜드가 안동문화관광단지에 위치해있습니다.)


25km부터 40km정도 까지는 흔한 국도 라이딩입니다. 서울에서 속초 가는 44번 국도 비슷한 길에 거의 완전 평지라서 신나게 속도를 낼만한 길입니다. 물론 차들도 함께 신나게 속도를 낸다는게 좀.. 갓길이 넓으니 안전하게 안전하게.


이 코스의 진정한 즐거움은 46km정도에 시작해서 95km언저리까지 계속되는 업힐 및 낙타등 코스입니다. 구수리, 수곡용계로, 계곡리, 박곡리 등등. 구수교에서 출발해서 이 부분만 왕복으로 달리는 것도 괜찮을것 같습니다. 이 구간은 차도 거의 없고 사람도 거의 없는 쾌적한 구간입니다.


코스지도를 자세히 보시려면 https://ridewithgps.com/routes/28924769

andong.zip




유교유교한 안동

유교 전통이 살아숨쉬는 안동이라 테마파크 이름도 유교랜드입니다. 코스 22km 지점에 표지판이 눈에 띄어 잠시 들러봤는데요, 다녀온 분들의 말을 들으면 의외로 재미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하니 다음번엔 아이들 데리고 한번 와봐야겠습니다.


영문이름이 컨퓨션 랜드. 혼란하다 혼란해.. ^^


얼마전에 좀비 NPC들과 신나게 뛰어다니며 즐기는 "조선 좀비런: 선비의 귀환"이란 이름의 액티비티 행사가 이곳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고 합니다. 겉보기와는 꽤나 다른 곳인듯.. 울음소리가 슬픔에 잠긴것 같아 "잠비"라니. "潛悲"인건가.. ㅋㅋㅋ


조선 좀비런 행사 홈페이지 : https://zombierun.co.kr/jz/



김태리..

하지만, 근래에 안동 방문자가 늘어난 이유는 단연코 미스터 션샤인 때문입니다. 김태리가 이병헌에게 같이 러브를 하자고 말하는 장면 정말 멋있었어요. 배경도 멋지고 구도도 멋지고 색감도 멋지고 대사도 멋지고 여주도 멋지고 남주는 안멋지고..


"합시다, 러브. 나랑. 나랑 같이.."


아빠뻘인 이병헌에게 이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이 멋진 장면의 촬영지는 코스 40km 지점인 길안사거리에서 찾아 들어갈수있는 "만휴정"이라는 곳입니다. 조용하고 멋진 계곡과 폭포, 예쁜 나무다리, 아담한 정자가 어우러져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주는 곳이지요.


하지만 예쁜 드라마 화면과는 달리 현실은 시궁창.. 휴일의 한창 붐비는 시간에 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올라가는 입구가 협소한데 불법주차로 더욱 붐비고, 나무다리는 엄청나게 좁고 시멘트로 급히 보수한듯 볼품 없는데다, 혼자 간것도 서러운데 앞뒤에서는 사진 찍을거 아니면 빨리 비키라며 막 밀어대고.. 시끄럽고.. 사람들 바글바글.. -_-


아래 사진에는 대기인력(?)의 웅장함이 잘 안보입니다만, 저 좁디 좁은 다리에 오르기 위해 커플들이 줄을 섭니다. 길쪽에도 정자쪽에도 사람들로 바글바글..


"사진 찍는거 안보여요? 좀 비켜주세요!"

"오빠. 저것들 왜 저렇게 오래들 서있고 저래?"

"어머나? 가뜩이나 좁아 죽겠는데 무슨 자전거를 타고 온데. 수근수근"ㅋㅋㅋㅋㅋ


그렇습니다. 솔로천국, 커플지옥! 유부남이지만 커플들 싫음.



더구나 "이병헌 vs 김태리" 구도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반드시 촬영자가 별도로 한명이 더 필요합니다.


커플들 따라 온것만도 서러운 촬영 담당 무수리(?)들은 산을 더 타고 올라가 다리가 잘 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를 잡고 우리 커플 순서 언제 오나 지켜보며 대기해야 함. 심지어 커플들의 외투와 짐까지 들고 있는 양반도 있음. ㅋㅋㅋㅋ


게다가 이병헌-김태리 사진 중에 바위가 배경에 나오는 사진과 동일한 구도로 찍으려면 저 위치도 아니예요. 오히려 더 낮고 위험한 다리 저쪽 반대편으로 내려가서 이쪽을 향해 찍어야 하는데, 거기는 까딱 발 미끄러져 떨어지기 좋은 엄청 가파른 절벽임..ㄷㄷㄷ

(무수리님들 모자이크 처리.. 저격수용 길리슈트 입은거 아님.)



용계리 은행나무

인파와 커플들로 오염(?)된 만휴정을 떠나 10여km를 더 달려 용계리에 도착하면 아직은 덜 오염된 용계 은행나무를 만납니다. 700년동안 살아왔다는 용계 은행나무. 수곡용계로의 첫 업힐 시작점 부근이고 도로에서 바로 보여서 찾기도 쉽습니다. 거의 사람이 안다니는 길이라 휴일인데도 아무도 없고 썰렁합니다.


이 나무는 원래는 용계 초등학교 안에 있었다고 하는데 수몰 위기로 30여년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좁은 다리를 건너면 가까이 가볼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은행나무 침상"같은 영화라도 하나쯤 나와줘야 할 포스..

가까이에서 용계리 은행나무를 보면 700년의 세월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조선 선조때 심은 나무라니..



길 위에서..

안동에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호수.


강..


오르막과 헤어핀들.


쉬고싶을 때마다 때마침 서있는 정자들.


또 정자..


심지어, 오르막과 헤어핀과 호수와 정자의 콜라보..



미슐랭 가이드에 빛나는 맘모스 제과.


디파이 어드밴스 프로 0

이번 "자이언트 코스 메이커" 라이딩을 위해 자이언트 코리아에서 대여한 2019년형 디파이. 트렉 자전거만 타던 입장이라 "자이언트가 만든 도마니 같은 자전거"라는 설명이 귀에 꽂힙니다. 험한 길을 편하고 빠르게 달릴수 있게 해주는 엔듀어런스 바이크라는거죠.


평소에 자전거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입니다만, 이 디파이에는 파워미터가 기본으로 달려있습니다??? 자이언트 자체 모델이라는데, 한번 비교를 해볼까 해서 제가 가진 가민 벡터2도 함께 설치했습니다.


아래 그래프의 보라색이 디파이의 파워미터, 푸른색이 가민 벡터2.

거의 비슷하게 잘 나오긴 하는데, 약간의 차이가 나는 부분은 아마도 40Nm를 지켜야 하는 벡터2의 규정 설치토크를 살짝 못미치게 조인 때문일겁니다.


실제 라이딩시의 반응성이나 파워값, 타이밍 등이 꽤 좋습니다. 가뜩이나 가성비 좋은 자이언트가 이렇게 양발형 파워미터를 기본탑재해서 팔기 시작하면 파워미터 시장이 꽤나 흔들릴것 같습니다. 옛날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면 "파워미터를 샀더니 프레임을 줬어요. 어? di2도 줬네요?"급입니다. ㄷㄷㄷ



이 자전거의 또다른 특징들은 진동을 흡수하는 D-Fuse란 기술을 채용했다는 싯포스트와 핸들바, 카본 튜블리스 휠셋 등등. 진동흡수는 일반도로에서는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시멘트 도로나 비포장 도로를 달려보면 대략 알게 됩니다. 몸에 전해지는 진동의 강도와 시간에 따른 피로의 누적치가 대폭 줄어드는건 사실입니다. 험로에서 자전거가 심하게 덜컹거리는 와중에도 몸의 충격은 적으니 정자세를 유지하며 흐름 끊기지 않고 페달링을 지속하기가 매우 용이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이번 라이딩에 가장 고마왔던건 거대한 11-34 스프라켓. 두둥!

12-25 쓰다가 이제 좀 편하게 살자며 11-28로 전향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11-32도 아니고 거의 디스크 로터만한 11-34라니..


"쯧쯧! 실력을 키워야지 저렇게 장비로 때울거면 도대체 운동을 하자는건지 말자는건지..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거야??"


네에.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과연 있지 말입니다.

오오! 34T의 축복이여. 로뚱이 25% 오르막을 올라갑니다. 25%를 시팅으로. 덩실덩실.


수곡용계로의 내리막에서 느낀 디스크 브레이크의 위력.. 물기로 바닥 미끄럽고 가파른 내리막이라 림 브레이크였다면 손에 피가 안통할 정도로 꽉꽉 잡아야 했을테고 카본휠 열변형 무서워 그나마도 잘 못잡고 달려야해서 이래저래 괴로왔을텐데, 이건 뭐 손에 힘도 거의 안들고 브레이크 맘껏 팍팍 잡아가며 편안하게 내려옵니다.


그 와중에 몹시 거슬리는 고어텍스 자켓의 지퍼 꼬다리들, 덜렁덜렁. ㅋㅋㅋ



은근 에어로한 디파이

AeroPod를 이용해서 제 애마인 2014년형 마돈 5.9와 2019년형 디파이의 CdA를 측정해서 비교해봤습니다.


CdA는 라이더의 자세와 자전거의 공기역학적 상태가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보여주는 값입니다. 보통 0.200~0.500 정도로 소숫점 3자리까지 표기하고 수치가 낮을수록 더 에어로하다(==빠르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전에는 CdA를 알아내려면 값비싼 윈드터널을 예약해서 측정을 하던가 벨로드롬에서 죽을둥 살둥 달려서 측정을 하던가 했어야 했는데요, 세상이 좋아져서 피토관이 달린 이 조그마한 기계로도 어느정도 근접한 측정치를 얻어낼수 있습니다. (참고 : http://youlsa.com/180)


두 자전거에 대해 동일한 조건의 측정을 위해 동일한 코스(탄천)에서 동일한 겨울 복장과 동일한 자세(후드 잡고, 팔꿈치 90도로 굽히고, 고개 숙이고, 어깨 좁히고)로 측정을 했습니다.


아래는 마돈 5.9의 결과.

버추얼 캄테일, KVF, 공기저항을 고려한 BB하단 브레이크 등등을 무기 삼아 에어로 바이크라고 판매했던 자전거입니다. 몇km를 달릴때 몇W를 아껴준다는둥.. 마돈으로 측정한 CdA는 0.392...


아래는 디파이의 결과.. 디파이는 엔듀어런스 바이크이니 지오메트리도 좀 더 편안하고 그래서 아무래도 마돈보다는 덜 에어로한 결과가 나올줄 알았는데, 의외로 수치가 마돈보다 좋습니다??? 음! 음? 0.364?


이유를 좀 생각해봤습니다. 두 자전거의 가장 큰 차이는 이 디파이가 저의 마돈보다 리치가 1cm 길다는 점인데요, 당연히 몸을 앞으로 더 많이 굽히게 되어 좀 더 공기역학적이 되는것 같습니다. 마돈이 제겐 좀 작은 사이즈라 평상시에도 리치가 좀 짧은게 아닌가 생각해왔었는데 과연 그런것 같습니다. 그동안 너무 작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느라 개고생하며 한스러운 시절을 보냈으니 이 기회에 싹 다 팔고 깔끔하게 기변을?? ㅋㅋㅋㅋㅋ


결국 조금 더 에어로다이나믹한 자세 덕에 CdA 수치가 좋게 나온 듯 합니다. 에어로 장비다 뭐다 하지만 역시 제일 중요한건 지오메트리와 라이더의 자세인듯.. 아뭏튼 저같은 동호인 레벨에서는 디파이 정도면 충분히 에어로다이나믹한 자전거다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먹거리

안동에는 먹거리가 많습니다. 산이 험한 내륙지방이라 해산물 맛을 보기 어려운 안동 사람들을 위해 해안지방에서 염장을 해서 운반해오느라 특유의 맛을 가지게된 안동 간고등어가 유명하고요, 안동찜닭, 안동식혜, 안동소주, 헛제삿밥도 유명합니다.


제기에 밥과 반찬을 올려 먹는 헛제삿밥의 유래에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유생들이 쌀밥을 먹고 싶지만 주변에서 욕먹을까 두려워 있지도 않은 제사를 지낸다며 모여서 가짜 제문 짓고 먹고 즐겼다는 설도 있고, 가짜 제사를 열어 배고픈 백성들을 먹였다는 말도 있고.. 보통 서울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아예 고추장을 함께 주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간장을 비벼 먹어야 합니다. 담백하고 맛있습니다.


다만, 안동식혜는 아직도 적응이 잘 안됩니다. 평생 한번 정도는 먹어볼만 합니다만, 처음 안동식혜 먹어보고 충격 먹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식혜"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않았더라도 충격이 조금은 덜했을거 같은데 말입니다.


안동역 앞 문화의 거리, 찜닭골목, 중앙시장과 안동댐 인증소 앞에는 맛집들이 즐비합니다. 특히 문화의 거리에는 미슐랭 가이드 추천 맛집인 맘모스 제과가 있어서 라이딩 전에 들러 대표메뉴인 크림치즈빵을 사먹고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라이딩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라이딩 마치고는 안동댐 앞에서 헛제삿밥으로 늦은 점심..



마치며

쓸쓸한 가을이 올때마다 안동의 현대적인 시가지와 오래된 고택들, 아름다운 가을산과 가을호수를 함께 편안히 즐기며 달려준 멋진 "2019년형 자이언트 디파이 어드밴스 프로 0"(길다~)의 자태가 항상 생각날것 같습니다. 다음 생에는 카본과 레진이 되어 다시 만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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