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밤 꿈속에 미시령 정상이 보입니다. 속초에 껌 사러 가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싶어 지난 주 일요일(2014/7/27)에 속초에 다녀왔습니다. ^^
해마다 한두번씩은 200km 정도의 라이딩을 해왔었는데요, 올해에는 가민 엣지 1000과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반포-속초간 GPX 파일을 구해서 가민에 넣고 그대로 따라만 가면 되니 정말 편리하네요. 폰과는 달리 배터리 걱정 없이 하루 종일 켜놓을 수 있으니 마음 편하고요. 게다가 심박수 알람 기능을 이용해서 특정 심박을 넘어가면 알람을 울리게 하여 무리하지 않도록 페이스 조절을 해가면서 달렸습니다.
가민과 블랙박스 카메라를 함께 거치할 수 있는 이노벨로 거치대를 이용하니 스템에 외장 배터리를 거치할 공간이 생겼습니다. 휴대폰 달고 다니던 바이크 메이트 거치대에 13,000mAh 짜리 거대(?) 외장 배터리를 매달고 혹시 모를 배터리 부족에 대비 했습니다.
이노벨리 거치대의 아랫쪽 카메라 거치대에는 얼마전에 구입한 듀란 아쿠아캠을 달고 달렸습니다. 블랙박스 대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구매한건데 배터리가 2시간 반 정도 가기 때문에 평소 출퇴근시에 블랙박스 용도로 사용하기 딱 좋습니다. 속초까지 외장 배터리를 이용해서 충전해가며 사용했습니다.
참고로, 가민은 속초에 도착할 때까지 별도의 충전 없이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새벽 4시 반쯤 일어나서 물과 육포를 챙기고 새벽 5시에 집 앞 양재천을 출발했습니다. 요즘 의외로 해가 일찍 뜨는군요. 운동 나온 동네 어르신들도 많고요. 좀 더 적막한 분위기에서 고독하게 출발하기를 기대했는데 정반대의 정신 없는 분위기에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
한강 자전거길을 거쳐 남한강 자전거길을 계속 달립니다.
남한강길을 계속 달리다 보면 양평 부근에서 계속 6번 국도와 나란히 가게 되는데요, 거기에서 아무 곳이나 자전거길을 빠져나와 6번 국도에 합류하면 됩니다. 저는 오빈역 근처에서 나갔습니다. 아래 사진의 좌측이 남한강길에서 온 자전거 길이고요, 정면으로 가면 6번 국도. 길 찾기 쉽습니다.
길은 별다를게 없네요. 6번 -> 44번 -> 46번 -> 56번 -> 미시령 옛길 -> 56번... 이렇게 갈아타면서 가면 됩니다.
국도를 타고 달리다 보면 아래와 같은 우측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수없이 많이 지나가게 되는데요, 제 생각에는 가장 위험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갓길로 계속 붙어서 달리다가 끝부분에 길을 건너던가, 아니면 본선의 직진 차로로 계속 달리던가 해야 하는데요, 저는 무서워서 갓길로 달리다가 마지막에 정지하여 살피고 길을 건너는 방법으로 지나갔습니다. 고속으로 빠져나가는 차들이 많아서 정말 위험한 거 같습니다.
열심히 달리다 보니 경기도를 벗어나 강원도에 들어섭니다. 아... 강원도... 이름만 들어도 뭔가 지금까지 너무도 편하게 (경기도스럽게) 살았구나 반성하게 되는 이름입니다. ^^
이 속초 가는 길은 오토바이 라이더들도 굉장히 많이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멋진 오토바이들 원없이 보네요. 우렁찬 엔진 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요...
혼자 라이딩을 하게 되면, 보통 잘 안쉬게 되고 안먹게 됩니다. 지나고 보니 새벽 5시에 천하장사 쏘세지 2개 먹고 출발한 이후 100km까지 물과 육포만 먹어가며 달렸습니다.
그래서, "얼음"이라고 쓰여진 슈퍼에 들어가서 생수와 각종 도핑 물질(비타 500, 빵, 양갱 등등)들을 좀 샀습니다. 분명히 "얼음"이라고 쓰여 있는데 주인 아주머님이 친절하게 "얼음"은 없다고 하시네요. -_-
이 표지판이 처음으로 "속초" 이름이 나오는 표지판입니다. 102km짜리 속초...
역시 강원도라 그런지 오르막 차로 표지가 경기도보다 더 자주 나옵니다.
열심히 가다보니 홍천 지나 인제입니다. 홍천 정말 넓네요.
그나저나, "하늘 내린 인제"라니...
휴게소에 불끈 솟은 물건을 보니 라이딩 후기에 자주들 사진 찍으시는 그 휴게소 같네요. 그냥 통과...
속초 라이딩에서 빼먹을 수 없는게 터널 이야기입니다. 서너개 정도의 터널을 지나가는데요, 하나같이 자전거로 지나기엔 너무 무섭습니다. 지나가는 찻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고요, 갓길이 좁아서 피할수도 없어 공포에 질리게 되네요.
속초 가는 길의 터널들의 갓길은 보통 아래의 사진처럼 생겼는데요, 울퉁불퉁한 갓길로 달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차선에 들어가 달리기에도 너무 무섭고요. 그래서 저는 갓길이나 갓길 오른쪽의 2층(?)에 자전거를 들고 올라가서 걸어 통과했습니다. 처음에는 오전중에 도착해야겠다는 생각에 평속 관리해가면서 달렸는데, 터널 통과할 때마다 평속이 5km/h씩 뚝뚝 떨어지네요. 그 다음부터는 에헤라 디여~~~ 관광모드... ㅋㅋㅋ
나중에 다녀와서야 알게 되었지만, 각 터널에는 우회로가 있네요. 보통 터널 한참 전에 있다 합니다. 저는 우회로가 있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터널 바로 앞에 가서야 우회로를 찾으니 찾을 수 있을리가요... 암튼, 다음번엔 우회로를 좀 더 잘 알아서 라이딩을 해야겠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안나오는 인제 터널... ㅠ_ㅠ
"병영추억의 고장 원통"이라니... 정말 저 고장은 저거 말고는 내세울게 없다는 말입니까. ^^
한계 교차로... 속초 방향으로 꺾었습니다.
속초 36km 남았답니다. 170km 정도 달리고 36km 쯤 남았으니 기분은 다 온거 같습니다. 물론 아직 본격적인 업힐은 시작도 안했습니다만 기분은 좋습니다. ^^
"46호선 옛길"로 들어갑니다.
개인적으로 이 코스의 가장 멋진 곳은 "46호선 옛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계곡이 탄성을 자아냅니다. 약한 오르막이라 그런건지 오래 달려와서 그런건지 속도가 잘 안나는데요, 핑곗김에 속도 늦추고 천천히 구경하게 됩니다.
너무 멋집니다. 조만간 다시 원래의 삭막한 46번 도로로 합류하게 되지만 말입니다.
그...그런데.. 아까도 속초 36km 남았다메???? 길 바뀌었다 그런건지 왜 또 속초가 36km??? 표지판 하나로 사람 멘탈 터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세워놓은 표지판 같습니다. ^^
백담사 앞입니다. 저 멀리에 미시령 업힐 시작 지점 부근에 있다는 공포의 바람개비들, 풍력발전기들이 보입니다. 마을도 예쁘고 바람개비들 보니 힘 빠져서 잠시 쉬어가야만 하는 곳입니다. 약국도 있어서 박카스 한병 사먹고 업힐을 준비합니다.
미시령 옛길 교통이 "정상소통"이라네요. 190km 달리고 나서 업힐을 만나니 하나도 안반갑네요. ^^
본격적인 업힐은 차단기 지나고 부터입니다. 가민으로 경사도 보니 아랫쪽은 8~9% 정도 되는데 차단기 넘어서 본격적으로 오르막 시작되면 10% 정도가 되고 심한 곳은 14%가 넘네요. 거리는 3km인데 경사도가 장난 아닙니다.
와리가리 주행... 와리가리..
와리가리...1
와리가리...와리가리... 헉헉~~~~ 지금 다시 사진만 봐도 숨이 턱 막히고 힘든 기분이 느껴집니다.
업힐 하다가 실소를 하게 만드는 "빙판주의"...
총 3km의 업힐 구간 중, 1km 남았답니다.. 이즈음부터 가다 쉬다 걷다, 가다 쉬다 걷다... 힘 빠진 상태에서 미시령에게 한껏 유린 당합니다. ㅠ_ㅠ
다음번엔 속초에서 출발해서 서울로 오는 코스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이 있을 때 언덕을 넘어야 할 듯... 물론 속초에서 출발하면 업힐 거리는 훨씬 길더군요.
경사도 표지판도 사정 없이 막 10%....
어쨌거나 열심히 올라서 미시령 정상에 섰습니다. 구름과 바람이 너무 멋져서 한동안 정상에 멍하니 앉아서 아쿠아캠으로 타임랩스 촬영을 했습니다.
http://youtu.be/W5aBAZSzVbQ
그리고 나서 신나는 속초를 향한 미시령 다운힐...은 개뿔.... 길이 너무 꼬불꼬불하고 낙차가 커서 굉장히 무섭더라구요. -14% 찍히고 그런 곳은 브레이크 풀로 잡아도 고속으로 계속 미끄러져 내려가네요. 암튼 거의 전 구간을 브레이크 잡아가면서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아래는 역시 타임랩스로 찍은 미시령 아래 휴게소까지 다운힐 장면... 영상에서는 잘 표현이 안된거 같은데요, 다운힐 내내 좌우에 울산바위를 비롯한 설악의 절경이 펼쳐지는게 너무 멋지더군요.
http://youtu.be/oueikSyhEK0
속초 들어가서 일단 껌부터 사구요, 중앙시장 구석구석 구경했습니다. 도중에 한번도 식당에 들러 밥 다운 밥도 못먹고 육포만 주구장창 씹으며 달려왔더니 밥도 잘 안 먹힐거 같고 그래서 시내 구경만 신나게 하고 버스 타고 서울 돌아와서 저녁 먹었습니다. 밥 잘 챙겨 먹어가며 라이딩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버스 타고 되돌아 오는 길에 자리에서 눈을 좀 붙이려고 했었는데요, 도저히 그럴수가 없네요. 창밖을 보니 버스가 지금까지 제가 지나온 도로들을 되짚어 달리고 있네요. 열심히 달리는 라이더들도 보이고요. 신기하게도 길 한 조각 한 조각이 달릴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달렸는지 다 생생하게 생각이 나네요. 그래서 도중에 고속도로로 들어가기 전까지 눈을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래는 가민으로 찍은 경로. 209km... 계획상으로는 7~8시간 잡고 갔는데, 결국 이래저래 8시간 넘어 9시간 가까이 걸렸네요.
맨날 속초 간다간다 하면서 기회가 안되었었는데 뭔가 숙제를 마친 홀가분한 기분입니다. ^^ 다음번엔 또 어떤 라이딩들이 기다리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