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다녀온 후로 편도선이 부어 추석 연휴동안 갤갤대다가 어디 장거리 한번 뛰어 충격을 좀 줘야 몸이 회복되겠다 싶어서 동부 22고개를 다녀왔습니다. (네. 그냥 핑계입니다.^^)
벗고개-서후고개-명달고개로 이어지는 동부 3고개는 예전에 회사 동호회 정기 라이딩에서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22고개라니... -_-
일의 시작은 상오기님의 블로그에 올라온 22고개 코스파일과 상세한 큐시트....보다는 클리앙 자당에 닥터 하우스님이 적어놓으신 라이딩 후기... 인생사 힘드네, 토나오는 코스지만 어쨌든 해냈으니 아무나 할수 있을거네 등등등 약을 팔고 계신 블로그 후기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닥터 하우스님 후기] [상오기님의 코스 안내]
200km 거리에 4000m 정도의 상승고도라면 지난 봄 다녀온 설악 그란폰도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회사 자전거 동호회에서 호객(?) 행위를 좀 했는데요... 처음엔 여러명이 혹하더니 정작 당일에는 다들 초계국수나 먹으러 가야겠다며 도망들 가서 결국 10월 3일 토요일 아침에 혼자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_-
여럿이 가는 경우에는 보통 일행 중 한두명 정도는 힘들다거나 배고프다거나 하는 말을 해주기 마련이라 핑곗김에 어느 정도 쉬면서 달리게 되는데요, 혼자 장거리 라이딩을 하게 되면 사진이고 나발이고, 휴식이고 밥이고 대충 때우며 달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이번엔 인생 최초의 경험들을 몇가지 하게 되었습니다.
1. 봉크 : 지금까지 자전거 타면서 한번도 봉크를 겪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체중이 좀 나가니 몸에 저장하고 있는게 많아서 안먹고 대충 달려도 괜찮다고 항상 생각을 했었습니다만.... 고개 이름도 잘 모르고 가민에 저장된 코스대로 달리게 되니 "딱 한개만 더 넘고 밥먹을까?"하며 계속 달리다보니 결국 17개의 고개를 넘게 되었고 결국 봉크가 왔습니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3시까지 밥을 안먹고 계속 오르막을 달린 셈이니 지금 생각하면 그럴만도 하죠. 어질어질한 현상이 한동안 계속 되다가 순간적인 전신무기력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네요. 무서운 경험이었습니다.
2. 쥐... : 지금까지 자전거 타면서 한번도 쥐가 나본 적이 없었는데요, 봉크가 온 후에는 2번 연속해서 쥐가 났습니다.
그냥 집에 가야하나 싶었는데, 뭐 또 앉아서 쉬면서 콜라 좀 마시고 하니 괜찮아져서 다시 업힐을 시작했습니다.... 만....
오르막에서 또 쥐가 나네요... 쥐라는게 한번 나면 계속 나나봐요...
게다가, MTB 클릿 쓰다가 요즘 로드 클릿을 써보고 있는데, 빼는건 문제가 없는데 끼우는게 너무 어렵습니다. 자꾸만 페달 뒷면을 긁어대고 있어요... -_-;; 평지에서도 잘 못끼우는데 오르막에서는 한번 클릿을 빼고나면 절대로 다시 끼울 수가 없네요. 그래서, 그냥 헬멧 벗고 클릿 슈즈 손에 들고 션션하게 끌바를... ㅋㅋㅋ (영화에 가끔 나오는, 예쁜 여배우들이 하이힐 벗어 손에 들고 막 화나서 걷는 장면....과 비슷하지만 주인공의 두께는 매우 다릅니다. ㅋㅋㅋㅋㅋ)
혈동고개도 이미 끌바 했는데 뭐 나중에는 목숨(?)을 위해서라도 그냥 좀 힘들다 싶으면 끌바를 했습니다.
그렇게 코스를 따라가다 보니 20번째 고개, "출입금지" 간판이 걸려있는 오르막이 나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밭배고개"입니다. 이번 라이딩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언덕은 바로 여기 밭배고개네요. 공사중인 구간이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부분적으로 다시 임도화(?) 되어가는 부분도 있고 그러네요. 이 오르막 오르면서 펑크와 봉크에 지친 몸도 마음도 힐링 되는 느낌이 들어 너무 좋았습니다. 로드 싸이클보다는 MTB 체질인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오늘 펑크도 여러 차례 작렬했는데, 낮에도 한번 났었지만 마지막 고개인 22번째 신당고개를 넘고 한 4km쯤 가서 결정적인 펑크가 2번 연속 났습니다.
결론적으로 얼마전에 사서 져지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토픽 레이스 로켓 HP 펌프가 나쁜 놈... -_-
이 레이스 로켓 HP 펌프의 밸브 연결부는 아래 사진과 같이 튜브의 밸브에 돌려서 고정한 후에 공기를 주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공기를 다 넣었으니 이놈을 다시 돌려서 빼내는데.... 그런데... 튜브의 공기 주입구인 코어 부분이 덩달아 함께 빠집니다... -_-;;;; 그래서 다시 밸브 코어를 돌려 끼워 넣었지만 코어가 망가졌는지 그 다음부터는 공기가 들어가질 않않습니다. 넣는 족족 바로 빠져요. -_-;;;;;;; 그래서 휴대하고 있던 새 튜브를 끼우고 다시 바람 채워 주행을 하려는데.... 출발하려고 보니 역시 또 코어가 손상되었는지 공기가 쉭쉭~~~ -_-;;;; 펌프가 튜브 2개를 다 해먹는 거지 같은 경우가....
원래는 물통 옆에 지요 GM-71 펌프를 달고 다니고 있었는데요, 두어달 전에 "공구통에 간지 있게 들어간다"는 펌프를 발견하고 이 레이스 로켓 HP 펌프를 사서 가지고 다니고 있었는데....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이런 사고를 치네요. 역시 신뢰성이 필요한 부분에선 "time-proven" 기술들이 정말 중요한거 같습니다.
결국 택시 불러서 주차해놓은 양수리까지 복귀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해지기 전에 44번-6번 국도 타고 양수리까지 오는거였는데... ㅠ_ㅠ
집에 와서 레이스 로켓 HP 펌프 버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래쪽의 펌프는 새로 주문한 토픽 하이브리드 로켓 RX... 테스트를 좀 해보니 튜브 연결 부위에 돌려 끼우는 방식이 아니라서 튜브의 코어를 망가뜨리는 일 없이 100psi 넘게 공기 주입을 안정적으로 해냅니다. (뭐 당연히 팔은 좀 아픕니다만...) 게다가 CO2 인플레이터를 겸하기 때문에 장거리 달릴 때에 CO2 깡통 두어개 함께 챙기면 정말 마음이 든든할 듯 합니다. 이놈도 말썽 부리면 다음부터 토픽은 안녕...
원래의 상오기님의 22고개 코스에서는 용문역 도착까지 200km 정도였고, 제 계획은 용문역에서 양수역까지의 약 30km를 더 달려서 총 거리 230km로 마무리 예정이었는데... 결국 불의의 펑크로 180km에서 마무리 했습니다.
그래도, 계획했던 22개의 고개는 모두 넘긴 넘었으니 완전한 실패는 아니지만.... 끌바로 넘은 몇몇 고개들과 마지막 국도 평지구간 리벤지를 위해 다시 한번(아마 2016년 봄?) 다음 기회를 노려봅니다. ^^
P.S) Veloviewer의 3D 프로파일을 통해서 이날 달렸던 코스를 살펴보니 어느 고개들이 힘든 고개였는지 한눈에 보이네요. 빨간색이 많은 고개가 힘든 고개들이죠. 벗고개-서후고개-명달고개 3콤보는 이 스케일로 보면 별로 험한 언덕이 아닌걸로 나오네요... 거기도 죽겠든데.... -_-
역시 널미재-혈동고개-대곡치의 3개 고개가 이 코스의 최고 백미인 듯... 나머지 19개의 고개는...그냥...고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