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순간 매혹이 되어 버리는 물건들이 종종 있습니다. 제게 있어서는 처음 가졌던 통기타, 지포 라이터, 그리고 이 와프팩터(Warp Factor)가 그런 것들입니다. 매력을 느끼는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도 알수 없는 무언가가 잡아 당기는 듯한… 이 맨질맨질한 가죽 옷의 다스 베이더를 연상시키는 Warp Factor도 처음 본 순간부터 그런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포장 상자 겉면에 도발적인 말들이 참 많이 쓰여 있습니다. 상자 한쪽 면에 “Pure Dark Energy”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고 다른 면에는 “니 앰프를 괴물(monster)로 만들어준다”는 말이 써있습니다.
퍼즈 페이스와 비슷한 둥그런 모양새에 어두운 포스가 느껴지는 Hughes & Kettner의 Warp Factor입니다. 생긴거부터 누메틀이나 그런 비슷한 쪽에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입니다. 튼튼한 강철 케이스에 걸맞지 않게 아랫쪽면에는 미끄럼 방지 스펀지가 소심하게 붙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페달들과는 달리 건전지를 사용할 수 없고 전용의 아답타만 이용해야 합니다. 15볼트던가? 볼트수도 이상하고 게다가 교류 아답타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페달파워는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3개의 노브 중 Gain과 Level은 다른 이펙터들과 동일한데요, Warp라는 이상한 이름의 노브가 있습니다. 이건 미드-스쿱(mid-scoop)의 양을 조절해 주는 겁니다. 조절하다 보면 결국은 쨍강쨍강 하는 고음과 쿵쿵 울리는 저음만 남습니다. ^^ 미드-스쿱에 일가견이 있다는 몇몇 페달들이 있는데요, 제가 써본 것들은 메탈존과 램피지 밖에 없었습니다. 둘 다 나름대로 특색이 있었습니다만, 메탈존의 경우에는 미들을 깎아 내림에 따라 화이트 노이즈에 가까운 소리가 그 자리를 채우는거 같은 특징이 있었고, 램피지의 경우에는 제게는 웬지 모를 건조함과 허전함이 느껴지더군요.
어쨌든, 이 워프 팩터도 앞서의 두 페달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한 미드-스쿱 합니다. 게다가 미들을 낮춘다고 기타 소리를 모기 소리처럼 만들어 놓지도 않습니다. 음압이 약해지지도 않습니다. 미들이 줄어들면 그에 따라 전체의 음량과 다이나믹 레인지를 보정해주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면서도 피킹의 강약에 반응하는걸 느낄 수 있습니다. 메탈존의 경우처럼 연주자의 피킹을 무시하고 자기 소리만 내는 것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페달 한가운데에 “SUB”라고 쓰여져 있는 버튼이 있는데요, 이건 너무 강력해서 웬만한 위기에서는 눌러서는 안된다는 (잘못 누르면 오히려 위험하다는) 마징가 조종간의 네번째 버튼에 해당하는 겁니다. -_-; 설명서에 따르면 4×12″ 캐비넷이 아니면 쓰지 말라고 합니다. 초저음역을 강조해주는 버튼인데요, 4×12″ 캐비넷에 쓰면 말 그대로 사람 후려 패는 톤이 나옵니다. 저음 뮤트음을 칠 때마다 스피커로부터 몸을 피하게 만듭니다. -_- 진짭니다..
결국 워프 팩터의 소리를 정리하자면, 뭐라 표현하기 힘든데, 두꺼운 강철판을 무겁게 쿵쿵 두드리면서 동시에 전기톱으로 강철판을 잘라대는것과 비슷한 소리가 아닐지… 무슨 말을 하는건지… -_-;
당황스럽게도 기타의 볼륨을 서서히 줄이면 음의 게인이 곱게 빠져 달아납니다. 볼륨을 많이 낮추면 결국 아주 블루지하고 빈티지한 따스한 소리로 바뀝니다. 딱히 뭐라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저음이 잘 살아있는게 펜더 베이스맨에 기타 꽂아 연주하면서 좋아라 하던 옛날 기타리스트들이 떠오릅니다. 물론 베이스맨의 소리와는 다릅니다. 조금은 현대적인 소리이고요. 나중에 한번 블루스곡 연주할 때 제대로 한번 써봐야겠습니다.
작년보다 가격이 거의 절반으로 떨어져서 이젠 메탈존과 거의 비슷하거나 더 싸지 않나 싶습니다. 하이게인 페달 중에 최고의 가격대 성능비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어둠의 포스가 담겨있는 사운드를 원하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