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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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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우연히 눈에 띄어 사게된 책입니다. 제목이 끝내줍니다.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라니… 이 책은 1920년대의 조선 사회,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의 근대적/현대적 인간성의 형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20년대의 사진이나 문건, 신문의 만평 등을 많이 모아 놓았네요. 책 머리에 써있듯이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인간성이 형성된 시점이 1920년대라고 하네요. 자유연애나 개인적 쾌락 추구 등을 삶의 방식으로 삼는 “모던보이”나 “모던 걸”들의 출현이 그때 부터이고요. 이 책에서는 현대적 인간성이라는건 정치/경제적 사회 변화에 따른 사회의식 변화에 따라 생겨나게 된 것 같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옛날 자료들이 나오는데 그중 제일 재미있는 문건이 바로 책의 제목과도 같은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라는 문건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서울 시내의 좀 논다는 사람들이 그 당시 경무국장(지금으로 보면 서울 경찰청장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에게 서울 시내에 땐스홀 만드는걸 허락해 달라고 탄원을 올리는 내용입니다. 글을 올린 사람들은 대일본 레코-드 회사 문예부장, 끽다점 <비-너스>의 마담, 조선권번 기생, 한성권번 기생, 바 <멕시코> 여급, 영화배우 등등입니다. -_-;

제 생각에 1920년대라고 하면 을사보호 조약이 지난 후이니 당연히 일제시대이고 조선의 국민들은 도탄에 빠져 식민지 수탈을 당하고 그래서 국민들 모두 암울하고 불쌍한 삶을 살았다고 배운거 같은데 그런 때에도 사회 일각의 노는 계층(?)들은 저렇게 열심히 놀아재꼈나 봅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 대해 잘 모르는 제가 보기에는 참 황당한 일이네요.

글은 비교적 논리적인 전개를 가집니다. 탄원자들은 해외여행도 많이 해본 사람들이고 한데 해외를 다녀 보니 동경, 상해, 하얼빈 등등 문명 도시에는 다 땐스홀이 있는데 왜 서울에는 허가를 해주지 않는 것이냐. 댄스는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세기말적 악취미가 아니라 국제적 외교나 사교 등에서 큰 역할을 하는 좋은 활동이다. 술마시고 주정하기 위해 가는 카페나 퇴폐적인 공창은 허가해 주면서 건전한 땐스홀은 왜 허가를 해주지 않냐. 이제 만주사태도 끝나고 평화가 도래했으니 땐스홀을 허가해달라. 뭐 이런 내용입니다. 카페 등에 가서 술을 마시고 유흥을 즐기려면 40,50원이 필요하지만 땐스홀에서 한스텝 밟는데는 5전이나 10전 밖에 들지 않는다고 금액까지 들이대며 탄원을 합니다.

이 책을 읽고 보니 우리나라의 근대성/현대성이 형성된 시기는 1920년대부터가 맞기는 맞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태평양 전쟁과 6.25 등을 거치며 근대성/현대성이 후퇴한 것 같습니다. 6.25 뒤에는 곧바로 군사정권들이 그 뒤를 이었지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전근대적”이라느니 “봉건적”이라느니 하는 말들이 많이 쓰이는데 이런 것들은 우리 사회가 1920년대 이후 정상적인 성장 궤도를 밟았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많이 쓰이는 단어는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 따르면 전근대 시기는 1920년대 이전을 말하는 것이니까요.

저만 보더라도 50년대나 60-70년대의 옛날 신문이나 사진, 만평 등을 읽어보면 지금의 정서로 사실 공감이 잘 안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웬지 너무 고리타분한거 같구요. 1920년대의 기사나 만평들을 읽어보면 오히려 더 현재 우리들의 정서와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기적이고 쾌락적인 면 등을 보면 그런거 같습니다. 물론 일부 잘 사는 서울 사람들에 한정된 경우이겠지만요.

1920년대는 대중들에(비록 돈 많은 대중들이었겠지만) 자동차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전기가 대중화 되어 밤 거리가 밝아지기 시작했던 시기입니다. 어떤 신문 사설에서는 220리로 질주하는 미친 젊은 것들에 대해 개탄하는 글이 실렸더군요. 220리라고 하면 시속 55킬로미터 정도겠죠? ^^ 영화들이 제작되기 시작했고, 라디오 방송도 시작됐습니다. 쇼핑을 위한 백화점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자유연애와 세련된 외모, 개인적 쾌락과 영달을 중시하는 모던보이들과 모던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아래의 그림은 1920년대 도시의 부부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신문 만평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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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스페인 기자 아손 100년전 한국을 걷다”라는 책을 읽었었는데요, 거기에 묘사된 조선의 사회 전반의 모습과 이 책에 보이는 조선의 모습은 상당히 다릅니다. 글을 쓴 사람들의 관점의 차이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불과 20-30년의 차이인데도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보면 대단한 격동의 시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시대에나 노는 사람들은 항상 놀아 재꼈나 봅니다. 암울한 일제시대에도, 독립군들이 목숨을건 전투를 하건 말건, 징용을 끌려가건 말건, 창씨개명을 하건 말건, 순사들에게 고문을 당하건 말건 열심히 놀아재낀 여러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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